2023. 12. 22. 11:36ㆍ카테고리 없음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하는 진리의 말씀
사실 나는 회사가 잘 못 되고 나서 삶의 의욕도 없고 목표도 사라지고 나니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더라. 그런데 가족이라는 끈을 놓기가 힘들었고 아이들이 커가도록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살게 하였고 그러던 어느 날 믿음을 갖게 되었어. 고등학교 때 철영이의 꼬임(?)으로 교회에 2년 넘게 다니면서도 생기지 않던 믿음을 얻게 된거야. 미국에서도 1년 넘게 교회를 다녔었는데 그래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역시 나는 교회와 어울리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아는 분이 와서 우연히 가게 된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설교가 좀 다르게 들리더라.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샌디에고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꼭 한 번 와 보라고 하던 말이 귀에 울려서 그 교회를 가게 되었지. 그런데 희안하게도 그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한 주 전에 다른 교회에서 설교하시던 그 성경 구절로 말씀을 전하시는데 어찌 그렇게 내 사정을 다 알고 얘기를 하시는지. 그냥 너무도 훤히 나를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을 위로하고 나를 감싸 안고 살아가야 할 좌표마저 제시해 주는 그런 설교였단다. 지금도 내 방에 걸려 있는 그 말씀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1절의 말씀이야. 너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거야.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성경의 말씀은 이렇단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 당시 나의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고 힘들었단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면 회사가 무너지고 세 치 혀로 사기를 치던 자와 골프장을 삼키고 돈도 제대로 안 주던 자와 꿈에서 매일 싸우고 때리고 악다구니를 치다가 일어나면서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였단다. 참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었지. 그런데 이 성경 말씀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그 날 저녁부터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한 말씀 한 말씀이 살아 숨 쉬면서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셨어. 그렇게 내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성경을 읽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토록 외롭고 고통스런 동굴을 지나고 있던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등불이 되고 새롭게 인생을 살아 볼만한 가치가 생겨나게 되었단다.
갑자기 편지해서 나의 간증을 전하니 좀 의아할 수도 있겠다만 참으로 희망이 없는 이 시대를 살면서 의지할 곳은 하나님의 나라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뿐이라고 믿게 되었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변하고 그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카멜레온도 아닌 것이 모습을 바꾸기를 양심도 없이 상식도 없이 해대는게 인간이고 보면, 변치 않는 진리로서 우리에게 진정한 가치를 전해주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불변하는 것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뿐이라고 믿게 되었어. 결국 한 마디의 말로서 너에게 위로를 건네기보다 네 마음에 실질적이고 영원한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믿게 된 하나님의 말씀뿐이라는 깨달음 아래 한 때 너와 함께 진각종의 옴마니 반메훔을 외며 진리를 찾고자 했던 너에게 다른 형편도 모른 채 내가 믿는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고, 세상을 살다보면 이 세상의 섭리가 모두 창조자의 진리 아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잖아. 나도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 보았고 지금도 가슴 한편에는 복수의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아 있다마는 올바른 심판은 이 세상에서 기대하기 힘드니 결국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심판에서 진리가 살아 있을 거라는 칸트의 고백을 동감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는데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천국은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많은 독서와 강의를 접했어. 천국은 확실히 존재하고 나는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내가 오늘 밤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 천국 문 앞에 섰는데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게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분명히 답을 할 수가 있단다.
친구야, 너는 그 답을 가지고 있니? 아마도 너는 선하게 살았고 남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답변이 아니란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게 되었는지 또 친구도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알 수 있는지 얘기해 볼게.
천국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 (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고”(롬6:23) 말씀하고 있어. 하나님께서는 이 영생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지.
사실 우리가 살면서 생명에 꼭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선물로 거저 받았어. 예를 들면 밝은 햇빛, 공기, 물 등은 값없이 받고 있는 것이잖아. 이와 같이 천국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는 거야.
그러므로 천국은 돈이나 공로나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야. 성경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 2:8-9)라고 말씀하고 있어.
천국(영생)은 값없이 받는 순수한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돈이나 공로나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야. 너의 절친한 친구가 너를 위해서 아주 값진 선물을 가져왔는데 네가 지갑을 꺼내 가지고 그 선물 값을 지불하려 한다면 그것은 그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이 되겠어? 선물은 값없이 받아야 하잖아. 단 한 푼이라도 지불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잖아. 영생의 선물도 이와 마찬가지란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 아니겠니? 그러면 왜 이렇게 영생을 꼭 선물로만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성경이 인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어.
인간은 죄인이란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하고 있어.
흔히 죄라고 하면 우리는 단지 강도나 살인, 도둑질, 간음 등과 같이 어마어마한 죄를 염두에 둘 때가 많지. 하지만 성경은 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단다. 화를 내거나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만이 죄가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지 않거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역시 죄라는 것이야. 또한 죄는 행동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정욕, 교만, 미움, 탐심, 시기, 질투, 거짓말처럼 우리의 생각과 말로도 짓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마음에 간음했다고 말씀하고 있어.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단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모든 이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죄를 짓는 것이 사실이잖아.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많은 죄를 짓고 살아. 예를 들어 하루에 열 번이나 다섯 번, 아니 단지 세 번만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봐. 아마 그런 사람은 걸어 다니는 천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처럼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루에 세 번이면 일 년에 천 번 이상, 90평생을 산다면 9만 번 이상의 죄를 짓게 되잖아. 만일 9만 번 이상의 범죄 기록을 가진 상습범이 형사법정에 설 때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잖아. 이 세상에서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죄인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어.
그러므로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어.
만일 인간이 선행으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해. 그런데 하나님의 표준이 무엇인지 알아? 하나님의 표준은 “온전하라!”는 것이야. 우리가 선행으로 구원을 얻으려면 얼마나 온전해야 되는지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나님의 표준은 우리가 항상 모든 것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야.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우리 인간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4:12)고 말씀하고 있어.
이제 왜 나나 친구들이나 어느 누구라도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또 착하게 살아도 자신의 선행을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단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를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그 동일한 성경이 “하나님은 또한 의로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죄를 벌하셔야만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어. 성경에 보면 “벌을 면죄하지 않고... 보응하리라”(출 34:7하)고 말씀하고 있어.
어떤 무장강도가 은행을 털다가 붙잡혔어. 그 강도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 돈도 다 돌려주었어.. 그렇다고 해서 판사가 그 강도를 그냥 풀어준다면 그를 공의로운 판사라고 할 수 있을까? 판사도 세상의 법 때문에 범법자를 처벌해야 한다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죄를 벌해야 하실까? 그것이 바로 성경에 하나님께서 벌을 면죄치 않으신다고 하신 말씀이야.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 죄인을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하나님은 또한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는 반드시 벌하셔야만 하는 이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하셨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
예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시란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14)라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란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놀라 소리쳐 말하기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My Lord and my God!)"(요 20:28)라고 고백하였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삶을 사시고,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천국의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어.
책이 한 권 있는데 이것이 나의 삶을 아주 상세히 기록해 둔 책이라고 생각해 보자. 여기에는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 내 마음에 스쳐간 모든 생각, 내가 한 모든 말과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 성경은 언젠가 이 책이 하나님 앞에 펼쳐지고 내가 행한 대로 심판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어. 여기에 문제가 있어. 바로 이 책에 기록된 나의 죄가 문제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의 죄는 미워하셔서 반드시 벌하셔야만 한다는 거야.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어.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라고 했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나의 모든 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이야.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벧전 2:24)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어.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이 치러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어. 신약원문에서는 이 말이 ‘테텔레스타이’라는 상업적인 용어로 되어있는데 “완불되었다. 빚이 갚아졌다”라는 뜻이 있데.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다 갚아주신 것이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영생의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천국에 올라가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
이 영생의 선물은 믿음으로 받는다.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란다. 열쇠꾸러미가 있는데 이 열쇠들은 다소 비슷해보여. 그러나 이 열쇠들 중에서 우리 집 현관문을 여는 열쇠는 한 가지뿐이지. 마찬가지로 천국문을 여는 바른 열쇠는 구원 얻는 참 믿음밖에 없단다. 그러나 비슷하지만 구원 얻지 못하는 믿음이 있어. 구원 얻는 참 믿음이 아닌 것은 단순한 지식적 동의와 일시적, 현세적 믿음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역사상 실존 인물임을 믿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어.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믿지만 그분이 현재 자기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믿지는 않고 있는데 이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란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적 동의에 불과한 거야. 그런데 이런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다고 해.
성경을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하고 있어. 성경에 말씀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고 했어. 귀신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어디에도 귀신들이 구원받았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어. 그것은 귀신들의 믿음은 머리로만 아는 단순한 지식적 동의에 불과했기 때문이지.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물어보면 그들이 건강문제나 재정문제, 자녀문제와 같은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일들을 위해서만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그들은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지나가고 나면 더 이상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아. 잠시 있다 지나갈 이 세상의 일들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이야.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해.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믿음도 구원 얻는 믿음은 아니야.
구원 얻는 참 믿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것이야. 성경을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고 말씀하고 있어. 이 말씀에서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직 예수님만을 신뢰한다는 의미야. 바로 이 믿음이 구원얻는 참 믿음이란다.
내가 의자를 가지고 설명을 해볼게. 눈앞에 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고 내가 여기 앉으면 편히 쉴 수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지? 그러나 아주 단순한 이유로 내가 지금 쉬지 못하고 있어. 그것은 내가 아직 거기 앉아 있지 않기 때문이지.
감히 그럴 수는 없지만 이 의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 보자. 오랫동안 나는 그분이 존재하셨고 또 나를 도와주실 수도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내 자신에게 일어나는 재정문제, 가족문제, 결정을 내리는 문제, 여행의 안전문제 등 일시적인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문제들만 예수님께 맡겼어. 그러나 그분을 믿는 대신 나 자신의 선행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고자 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이 모든 문제를 안은 채 나를 예수님께 맡겼어. 비로소 나는 영생을 얻게 된 거야. 그때 나는 얼마나 평안하고 기뻤는지 몰라.
이와 같이 천국(영생)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지 말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다면 우리가 선행에 힘써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면 우리가 경건 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해야만 천국의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격 없는 우리에게 천국의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주신 예수님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기 때문이지.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어.
믿음은 왕이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민 거지의 손과도 같아. 나는 수년 전에 깨끗지 못하고 자격 없는 손을 내밀어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았어. 그때 나는 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어. 물론 지금도 없어. 그러나 나는 믿음으로 영생을 받았어. 은혜로 얻은 것이지.
지금까지 성경 66권의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얘기했는데 이해가 되니? 자네는 머리가 좋으니까 이해를 잘하겠지..
지금 이 시간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에게 이 영생의 선물을 주기 원하는데 받겠느냐?”라고?” 묻고 계셔.
내 사랑하는 친구야, 이 영생의 선물을 받기를 원하니?
네가 결심하고 믿음을 가진다고 하며 마음의 문을 열면 예수님이 너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함께 지내실 거야.. 성경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고계3:20)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어.
다소 거북스러운 표현도 있을 수 있고 단 번에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좋은 것이 예수님을 영접한 일이라고 믿기에 힘든 시간을 인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한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시기라는 것을 알기에 다소 생경 맞을지 몰라도 내가 인고의 세월을 극복한 유일한 처방이었던 이 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고 이 세상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살 수 있는 자가 된 놀라운 사실을 전하는 거란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용을 통해 일자리와 급여를 줌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데 나의 삶의 보람이 있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복음을 전함으로 함께 천국 영생을 누리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나의 삶의 기쁨이고 목적이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친구에게도 천국 영생의 선물을 주시고자 하신단다.
친구야, 나와 함께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영접함으로 이 영생의 길을 같이 가면 좋겠구나.
2017년 5월 19일
친구가
추신 : 몇 권의 책을 권해~~
기독교의 기본진리 (존 스토트) :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해.
1958년 이후 영어권에서 40년 가까이 수백만 부가 팔린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입문서로 30년 넘게 십여 만부가 팔린 최장기 스테디셀러이며, 이미 고전으로 인정받는 명저야.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에 대해 이 책만큼 단도직입적으로 치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쓰인 책은 그리 많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거야. 내용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잘 설명하고 있고, 단계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서, 읽다 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단다.
'교회는 반대, 예수 그리스도는 찬성'이란 말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자세를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제도화의 기미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반대하지. 확립된 질서와 그에 따르는 절대적 특권을 혐오하는 것이야. 그래서 그들은 교회도 배척하는데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교회가 이러한 악들로 극히 타락했다고 여기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들이 배척하는 것은 현대 교회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란다. 그들이 그처럼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정한 것은 기독교의 창시자와 그가 세운 교회의 현 상태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고 있어. 그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은 반제도적 인물로 그의 말 가운데 혁명적 색채를 띤 부분이 있었고, 또한 사상이 결코 부패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는 어느 곳에서든지 사랑과 평화가 넘치게 하였어.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가르친 것을 어김없이 실행했기 때문이야.
질문 하나, 그렇지만 그는 진실한 존재인가?
질문 둘, 기독교의 기본 진리란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가 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 인간이 구원받아야 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기독교는 단순히 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야. 행동이 따라야 해. 우리의 지적 신앙이 비판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것일 수도 있어. 그러나 신앙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자신, 마음과 생각, 정신과 의지, 가정과 삶을 개인적으로 남김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야 해.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의뢰하며 나의 주님으로 인정해 굴복해야 해. 그런 다음 계속해서 교회에 충성하는 교인이 되고, 지역 사회에서는 책임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하지. 기독교의 주장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야. 우리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찾고 계신다는 사실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주장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야.
스데반 보리의 위대한 선물 ( 스데반 보리 연구회 편역)
이 책은 종교적인 색채보다 저자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경험하고 전하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통해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다소 해결하고 그려볼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이 책이 전하는 생생한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정표 마저 일러주고 있다고 생각해.
인생의 발견 (시어도어 젤딘)
옥스퍼드의 명예교수 시어도어 젤딘은 독창적인 연구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사학 석학이야. 전작 《인간의 내밀한 역사》, 《프랑스인》 등 개인의 생동하는 삶을 조명한 그의 저작들은 전 세계 지식인들은 물론 대중 독자들까지 단숨에 사로잡으며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바 있어.
이 책 『인생의 발견』은 인간과 삶에 관한 그간의 성찰을 유감없이 펼쳐낸 그의 작업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해. 지성의 완숙기에 이른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영원한 화두ㅡ‘인류가 조금 더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에 다가서고 있는것 같아. 수천 년 인류 역사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져 간 수많은 삶, 흩어져버린 생각들을 차근히 검토하며 그 속에서 그 힌트를 얻고자 하고 있어.
그가 이 여정의 길잡이로 삼은 28가지의 질문들은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고 있어. 우리가 인생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져야 할 물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열린 질문은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으리라는 그의 믿음과,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많은 동료들에게 더 나은 삶의 좌표를 제시하려는 열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해.
젤딘은 “한 사람의 경험, 한 시대의 지식만으로는 하나의 인생이 가진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보고,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고민을 늘어놓음으로써 오늘날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문제들에 관해 새로운 답을 찾고자 했어. 시대와 공간의 교차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고민해 왔는지, 또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일깨워 주며 더 나은 해법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