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세운 독립운동가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을 세운 독립운동가 이승만 대통령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건국의 대통령으로 추앙받아야 마땅한 그를 공산주의자들이 폄훼시켜 독재자의 프레임으로 갇히게 하여 이 나라 대한민국의 뿌리를 모른 채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이 그를 바로 알고, 건국의 정신을 이해하여 건강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거듭 태어나게 함에 있습니다. 짧은 글을 통해 그의 치적을 소상히 설명해 낼 수는 없지만 문제의식을 지니게 되어 책을 붙잡고 진실의 문으로 들어서거나, 필자의 고찰을 받아들여 여태껏 속아온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기를 기대합니다. 다행히도 그에 대한 많은 책들이 그의 치적을 소상히 그리고 바르게 기술하고 있으므로 약간의 지적 능력만 지니고 있다면 왜곡을 위해 쓰인 책은 골라낼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몰락한 전주이씨 양반가의 자제였지만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5세에 천자문을 완독하고, 12세에 사서삼경을 독파하였다고 합니다. 13세 때부터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급제하지는 못하였는데 이미 구한말에는 실력으로 등용하는 것은 예전 일이 되었던 연유입니다. 구한말에 배재학당에 수학하던 중 독립협회에 참여하게 되고 무능하고 부패한 고종의 하야를 외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됩니다. 조선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집요한 구명 운동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6년 만에 미국의 밀사로 파견되기 위해 석방되게 됩니다.
선교사들은 그의 총명함에 감복하여 그를 목사로 성장시키기 원했고, 그는 배재학당에서 처음으로 배우게 된 영어를 엄청난 속도로 익혀 꺼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품게 되는 실력이 되었던 것이죠. 그는 최악의 투옥 생활 가운데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됨으로 인해 망해가는 나라를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로 건설해 내갰다는 투지를 키우게 됩니다. 20대 청년 이승만은 옥중에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5천 년 동안 지 속되어온 우리나라 왕정(王政)의 역사를 민주 공화정(共和政)으로 탈바꿈시키고, 대륙문화권에 속해 있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적 전통을 해양문화권으로 옮겨놓는데 이론적 기초가 된 책이자, 세계화와 선진화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제시합니다. 참으로 그가 이런 책을 20대에 썼다는 자체가 놀라울 따름 입니다.
미국에 특사로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독립을 타진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그 후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 길을 떠나 6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조지 워싱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를 마치게 됩니다. 가히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미국의 유수한 정치인들과 인맥을 쌓게 되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6.25 전쟁을 패망에서 승리로 바꾼 맥아더 장군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식민지 국가의 큰 희방이되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폭력적 항거보다 외교를 통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이주민이 가장 많았던 하와이에서 교육에 힘썼습니다. 실제로 조선이 망하게 된 원인이 고종의 무능과 백성의 배우지 못한 무지에 있었고,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의 무 장 독립운동도 민족혼을 일깨우는 효과가 있었음은 맞지만 일본의 군사력은 무장 투쟁으로 넘을 수 있는 벽은 아니었지요. 우리 임시 정부가 이끄는 독립군은 기껏해야 500명을 넘지 못하는데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킬 때 군인의 수는 750만 명이었고, 조선 땅에 있던 경찰 병력만 3만 5천 명이었다고 하죠.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교의 부재로 나라가 망해 버렸으므로 그는 열강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찮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것입니다.
3.1 운동 직후 국내외에 임시정부 속속 수립 … 망국으로 위축된 민족의 자존심 회복 [중앙선데이] 442호 1면
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망은 너무도 커서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그는 초대 대통령으로 옹립되었고, 해방 후 다시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 역시 초대 대통령으로 피선되었죠. 그런 인물이 왜 독재자의 낙인이 찍혔을까요? 그것은 이 나라 근대화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체제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이 가두어버린 프레임에 갇혀버린 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도서관에 가면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과 삶에 대해 바르게 평가하고 있는 책들이 왜곡하여 폄훼하는 책들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책의 양 만으로 진실을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각이 있는 자라면 그가 4.19 학생 운동에 의해 자진하여 권좌에서 물러 났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독재자가 아님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어느 독재자가 학 생들이 데모 몇 번 한다고 권좌를 내놓았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야를 원하는 학생들의 외침이 있자 조용히 자리를 내어 놓았고, 오히려 시위 과정에서 다친 학생들을 찾아 위로하고, “우리나라의 정신이 살아 있으므로 이 나라가 살아나겠구나” 하시며 기뻐하셨다는 전언이 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내각 구성
한 사람의 평가는 그가 떠난 후에 더욱 명백해집니다. 검소하다 못해 초라하게 살다가 가신 그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사신 이화장에 남겨진 유품들이 그의 삶을 말해 줍니다. 참으로 그의 삶은 이 땅의 해방을 위해, 그가 옥중에서 만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평생을 아낌없이 바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 들은 잘못된 전교조의 교육 아래 감사함은커녕 인정도 못하는 것이 실상입니다.
이화장 집무실 (소박한 의자와 책상, 다른 방에는 기워 입은 그의 옷들이 삶을 대변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짚어보면 그에게 씌워진 부정선거의 굴레는 그의 권좌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이미 압도적 리드를 하고 있었지만, 경합을 벌이던 민주당의 조병옥 씨가 선거 유세 중에 병사함으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었지요. 그런데 당시 제도가 부통령을 두고 있었는데, 이는 대통령 보궐 시에 권한을 갖게 되는 거였지요. 이승만 대통령이 연로 하심으로 (당시 85세) 여당의 세력들이 부통령을 자유당의 이기붕을 당선시키려고 꾸민 일이었답니다. 자유 민주주의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치체제임을 실감하고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2대 대통령 선거를 치를 만큼 철저했던 그에게 부정선거를 통한 재집권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또 다른 왜곡의 역사는 이승만은 6.25가 발발하자 제일 먼저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터졌을 때 지휘부를 후방으로 옮기는게 이상한 일인가요? 오히려 피난이 너무 늦었지요. 남하하여야 한다는 각료들을 만류하며 서울에 남았었고, 서울이 함락되어 부산으로 가자는 각료들과 대전에서 전쟁을 지휘했고,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바로 귀경하여 작전통수권을 그에게 맡겨 단숨에 압록강까지 탈환하게 되었답니다.
‘이승만 깨기’라는 책에서 권혁철 선생의 표현을 옮겨 봅니다. “적을 보자마자 꼬리를 사리고 도망가는 비겁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전황을 살피고 우방의 사령관을 만나러 다닐 수 있을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죽이기’에 나선 일부 세력들이 왜곡하고 비틀어서 억지로 만들어낸 허접한 인물이 아니다.”
소련은 3.8선 분할 점령을,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는 동아 일보 기사
그리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은 분단의 원흉이라고 폄훼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세히 기술하였지만 UN신탁통치 하에서 제헌 국가의 건립을 위해 남한만이라도 추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북한은 소련이 해방과 동시에 점령하여 38선 이북의 방북 자체를 원천 봉쇄하였고 UN 감시하의 국민 투표 자체를 불허하였지요. 더구나 북한은 대한민국의 건립 1년 전에 이미 북한만의 정부를 조직하였답니다.
남한의 우익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남로당은 소련의 지령으로 인해 찬성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다른 허위 날조된 사실은 이승만은 친일청산도 안하고 친일파를 비호했다는데 건국 당시 내각을 보면 북한은 거의 다 친일파였고 남한은 독립운동가 중심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구, 서재필, 김규식, 박용만, 김성수 같은 분이 모두 남한을 위해 일했고, 해방 이후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친일파 청산을 주장했지만 이승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고 하시면서 대동단결하기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는 36년의 일제 식민 치하에서 일본에 부역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38선으로 분단된 현실에서 민족이 더 이상 분열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친일파 프레임으로 공산주의 정권에 동의하지 않는 반대 진영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답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라는 허구로 공격합니다. 그가 미국에서 박사까지 마치고 미국에 많은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또 그것이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참으로 효과적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뜻은 너무나 확고하여 오히려 미국의 어느 정치인이나 학자들보다 더 국제 정세나 공산주의에 대해 정확히 파 악함으로 인해 미국 정부와 상당히 많은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는 1941년 봄에 ‘Japan Inside Out’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일본의 침략 속성과 야욕을 적나라하게 밝힘으로써 일본의 미국 공격을 예견하였지요.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는 전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6.25 동란을 휴전하려고 할 때 불가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 기회에 남북을 자유 민주주의 진영으로 통일하여야 한다고 휴전 협상을 극렬 반대하였답니다.
이러한 그의 움직임을 미국이 달가워할 리가 없었지요. 심지어 미국의 남한 사령관이었던 하지 장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의 고집으로 휴전 협정에 반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세계 최고 강대국과 최빈국이 서로 안보를 보장하며 싸워주겠다는 조약이 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닙니까? 그의 외교술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신묘막 측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영국 처칠 수상의 평가입니다.
1941년 이승만이 일본의 전쟁 야욕을 고발한 Japan Inside Out
그의 세계정세를 꽤 뚫는 혜안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는 세계의 어떤 지도자보다 탁월하였습니다. 미국이나 영국도 공산주의의 패악함을 직시하지 못할 때 그는 공산주의와 맞서 싸워냈고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나갔습니다. 아울러 그토록 가난하던 시기에 꾸준히 교육을 위해 힘써서 문맹률 저하에 앞장섰으며, 원자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6년 한미 원자력 협정을 이끌어 내 고 126명을 원자력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 유학을 보내고, 1958년 서울대 윤세원 교수로 하여금 문교부 기술 교육국 원자력 과장으로 임명하여 국회에서 원자력법을 통과시켜 미래가치를 추구한 것은 그의 역량의 단면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기틀을 확고히 하기 위해 바친 그의 삶에 한 없는 존경과 감사함을 바칩니다. 이 나라는 이 민족은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추앙하기는 고사하고 독재자의 프레임을 씌워 그를 내쫓고, 결국은 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의 하늘을 다시 보지 못한 채 하와이에서 1965년 쓸쓸히 눈을 감습니다.
우남 이승만은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 보내주신 선지자였고 대한민국을 자유 민주주의로 세우신 건국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근본 없는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라도 많은 국민들이 그의 공적을 기리고 그의 이름이 제대로 세워져서 이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신 그의 치적을 그리워하며 앙망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배울 것은 배우고, 고칠 것은 고쳐 나가서, 이 나라가 번영하는 것을 천국에 계신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도 기도하고 계실 그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이 민족이 깨어나서 광화문 광장에 그의 동상이 우뚝 서기를 기대합니다.
2019년 8월
건국의 아버지를 추모하며
참고 서적
독립정신, 이승만, 비봉출판사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운 독립운동가, 이한우, 역사공간
이승만 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남정욱 , 류석춘,
백년동안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 로버트 올리버, 동서문화사
이승만의 정치 경제사상 1899-1948, 김학은,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이승만의 기독교 수용과 기독교국가건설론 연구, 최종원, 북랩
이승만 평전 살림지식총서, 이주영, 살림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유영익, 청미디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 안병훈, 기파랑
미국에 당당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다시 생각하는 이승만과 박 정희의 벼랑 끝 외교전략, 이춘근, 글마당